이글은 억지스러운 교훈이 담긴 글입니다. 명언충포비아 읽기 금지
나 따위가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원래 초행길은 멀다.
나는 유난히 길 찾기에 약하다. 처음 가는 길은 물론이거니와 한 번 다녀왔던 길도 헤매기 일 수다. 볼일을 마친 후 건물 안에서 나오는 순간 왔던 길을 헷갈려하고 심지어 방금 왔다 간 엘리베이터의 위치가 오른쪽 방향인지 왼쪽 방향 인지도 혼란스러워 하는 일명 길치다. 그래서 한 번도 안 가봤던 장소에서 원했던 목적지까지 심지어 제 시간 안에 가는 건 그야말로 멘붕 상태의 연속이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일이 생기면 네이버 길 찾기 앱을 꼭 이용하며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최근에도 찾아가야 할 곳이 있어 예상 도착시간보다 한참을 일찍 출발했다. 아침 일찍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했던 탓인지 졸지도 못하며 버스와 함께 덜컹거렸다. 노래도 안 듣고 버스에서 나오는 전자 버스양의 목소리에 진저리가 날만큼 집중하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고비는 지금부터, 버스에서 내렸을 땐 지도 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웬걸 지도를 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빨간 점을 따라가도 없고 주변 실제 사진을 봐도 모르겠고 그래서 한참을 그 주변에서 방황하다보니 원했던 장소는커녕 웬 공사장만 줄줄이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시간은 촉박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발만 동동 굴렸는데 으스스한 동네분위기에 겁이 난 나는 결국, 지도 앱은 내팽개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땀만 잔뜩 흘렸다. 그런데 포기하려는 찰나 우연히도 너무 생뚱맞게 눈앞에서 목적지를 발견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다행히 시간도 맞아 뻔뻔하게 식은 땀 흩날리며 목적지로 들어갔다. 이제야 예상하건데 버스정류장에서 쭈우욱 좀 더 쭉, 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올법한 장소였다. 그날 이후 난 길 찾기 앱을 내 폰에서 없애버렸다.
과연 몇 명의 사람이 초행길에서 지도 앱을 켤까? 지도 앱조차 모든 길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앱도 모든 걸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로는 한참 찾고 있던 음식점을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이끌고 기대하며 갔던 옷가게는 온데간데없이 덩그러니 공터로 우리를 맞이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앱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일이란 개념을 초행길이라 생각하는 조금은 오그라드는 시도를 해보자. 사실 우리에게 내일이란 시간도 내일 그 자체도 초행길이다. 아무리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성경에 요한계시록을 실었을 지라도 내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내일은 누구에게나 초행길이다. 누구나 예상만 하고 계획을 세울 뿐 내일은 처음 살아보는 날이다. 누구나 초행길에선 방황할 수 있다. 실수 할 수 있다. 초조해 발만 동동 굴릴 수 있다. 긴장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수 있다. 원래 초행길은 멀다. 하지만 지레 겁먹지 마라. 나처럼 너무도 생뚱맞게 눈앞에서 목적지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20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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